주옥같은 응답하라시리즈 나레이션 모음 | 인스티즈

 

 

응답하라1997

제 1화 - 열여덟

형에게 난생 처음 맞은 엉덩이, 끊어진 비디오 테이프처럼 찢어진 내 가슴
누구든 사랑할 수 있을 것 같고 사소한 것 하나에도 내 모든 것을 걸었던 나이

열 여덟, 흔히 어른들은 우리 나이를 낙엽만 굴러가도 웃는 나이라고 하지만
그 때의 우린 그 어떤 어른보다 심각했고, 치열했고, 힘겨웠다.
1997년, 우리들의 열여덟은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시원)


제 2화 - 점점 달라지다

같은 모양을 맞춰야 점수가 나는 고스톱, 우리도 한 때 같아지려 애쓰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어느 한 순간 우린 달라지기 시작했다. 서로 다른 종류의 사람이 되어간다는 것, 그 땐 그걸 왜 그리 인정하기 힘들었을까.

사람은 모두 다르다. 그 것이 세상의 법칙이다. 인간 성장의 법칙.
열여덟, 우린 성장하고 있었고, 그리하여 서로 달라지고 있었으며
그 달라지는 서로를 받아들여야만 하는 또 다른 성장통 앞에 직면해있었다.

1997년 봄, 나와 그 녀석의 2차 성징은 시작된지 오래였고 우린 분명 달라져 있었다. 그리고 난 확인하고 싶었다.
지금 이 솟구치는 아드레날린이 쭉 똑같이 살아왔던 서로에게 달라진 모습을 들켜버린 부끄러움 때문인지,
아니면 소꿉친구를 향해 시작돼버린 내 첫사랑에 대한 설레임 때문인지.

인간 성장의 법칙, 소년은 남자가 되고 소녀는 여자가 된다.
하지만 남자가 되어버린 소년과 아직 덜 자란 천방지축 소녀, 문제는 그 속도가 다를 때 발생한다. (윤제)


제 3화 -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그 누군가의 비밀은 내가 미처 알지 못한 사실들을 말한다.
그리고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이 진짜가 아닐 때 비밀은 더 강력해진다.
과연, 내가 진짜라고 믿고 있는 것 중 진실은 얼마나 될까.

사람의 마음은 천층만층이다. 그 깊이를 알 수 없고, 그 끝을 알 수 없다.
서로 죽일 듯이 싸우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애정을 나누고, 한 없이 호기로운 수컷도 이성 앞에서는 그저 할 뿐이다.
그래, 진실은 불편하다. 그러나 그 불편함을 껴안지 않으면 우린 평생 가짜를 진짜로 오해하며 살아가야 한다.
불편한 진실도 안아주어야 한다.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시원)


제 4화 - 페어플레이

그 때 나는 알았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그녀를 향한 눈이 옆통수에도, 뒷통수에도 달리게 된다는 걸.
그리고 두드리지 않으면 열리지 않는다는 걸. 가만히 있다가 원하는 걸 얻을 수 없다는 걸.
이제, 페어플레이는 없다. (윤제)


제 5화 - 삶의 역습

길을 걷다 부딪히고, 도서관에서 같은 책을 고르고,
누군가 우산 속으로 뛰어들어오고, 그렇게 사랑에 빠지는 순간이란 특별할 줄만 알았다.
정말 상상도 못했다. 고작 이런걸로 빠지게 될 줄은.

1996년 봄, 내 첫 사랑은 그렇게 갑작스레 시작되었다. (윤제)


그 것은 소리가 아니였다. 서늘한 바람이 목덜미를 타고 들어오는, 아주 기분 나쁜 공기였다.
인간에겐 초능력이 있다. 그 기분 나쁜 전화벨소리, 신의 알람이였다. (시원)


삶은 항상 예상치 못한 순간에 다가와 뒷통수를 갈긴다. 그건 슬픔일 수도 있고, 지독한 두려움일 수도 있다.
그럴 때, 우리가 할 수 있는건 담담하게 현실을 받아들이고 깨끗하게 완패를 인정하는 것이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 놈의 인생. 피하고 외면해도 소용 없다. 그저 맞서 싸워 얻어터지는 수 밖에.
그래도 때론 삶은 생각치도 못한 선물로 우릴 설레게하고, 슬픔을 견디면 기쁨을 선사한다.

삶은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다. 그래서 우린, 모든 감각을 동원해 살아내야한다. (윤제)


제 6화 - 사랑, 안하던 짓도 하게 만든다

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일은 온전히 나를 버리는 일이다.
나답지 않은 짓을 하게 만드는 힘, 사랑이다. (윤제)


제 7화 - 장래희망

사람은 가까이 있는 꿈에 만족해야한다.
멀리 있는 것에 욕심내봤자 힘들고 속만 쓰릴 뿐이니까.
공허한 열정은 가슴앓이만 남을 뿐이니까.

그래서 세상 가장 미련한 짓이 짝사랑이다.

그래도 그 미련한 짝사랑이 해볼만한 이유는
그 열정이 아주 가끔은 큰 기적을 만들기도 하고,아주 가끔은 멀리멀리 돌아 이루어지기도 하며,
설령 이루지 못하더라도 그 꿈 근처에 머물며 행복해질 기회를 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태웅)


제 8화 - D-Day

난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형이 내 기지로 들어와 집을 짓고 공격하기 전까지 난 아무 것도 알지 못했다.
2차 세계대전, 이 지지부진한 전쟁을 끝내고자 연합군은 독일을 기습한다.
달밤의 상륙작전, 작전명은 D-day.

결전의 날, D-day를 준비하는 데는 치밀한 전략이 필요하다.
상대방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하며, 상대방의 상황을 이해하고, 상대방의 마음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완벽한 준비를 했다고 방심해서도, 때와 틈을 놓쳐서도 안된다.
D-day는 승리 혹은 패배. 딱 두가지의 결과만을 내주기 떄문이다.

내 인생의 첫번째 D-day. 1998년 11월 18일.
난 치밀하게 준비했지만 처참히 패배했다.
패배의 원인은, 정찰실패. (윤제)


제 9화 - 인연의 실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빨간 실을 손가락에 묶고 태어난다고 한다.
그 실의 끝은 인연의 상대가 묶고 있는데, 그 실타래는 이리저리 복잡하게 얽혀있어서 끝을 찾기 어렵다.
사람의 수만큼 얽히고 설킨 실뭉치들. 이걸 풀어가다보면 나도 모르게 운명의 상대와 마주치게 된다.
정말 인연의 붉은 실이 존재한다면 지금 나의 붉은 실은 누가 메고 있을까? (윤제)


제 10화 - 당신이 좋은 이유

당신이 좋은 이유? 그저 그 사람이라서. 바로 너라서. 이 것말고 다른 이유가 또 있을까.
차라리 이유를 알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럼 널 좋아하지 않을 방법도 찾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정 피할 수 없다면 원하는건 딱 한가지 뿐이다. 오래 두어도 진정 변하지 않는 사랑으로 남기를 바랄 뿐이다.
가슴 시린 우리의 사랑을 위하여. (준희)


제 11화 - 관계의 정의
관계에는 난이도가 있다. 내게 윤제는 그 중 가장 쉬운 레벨의 단계.
설명하기도, 유지하기도 쉬운 그저 그런 평범한 소꿉친구의 관계였다.
하지만 이 날 어렴풋이, 아주 어렴풋이 깨달았다.

어쩌면 우리도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단계로의 점프가 가능하단 사실을.
난이도 최상의 관계, 바로 남녀관계로 말이다. (시원)


서로 다른 것을 기대하고, 서로 다른 것을 바라보며, 서로 다른 꿈을 꾼 두 남녀사이에 벌어질 일이란 지속적인 사랑과 전쟁 뿐이다.
토라지고 달래주고 다투고 화해하고 상처주고 안아주는 변덕투성이 조울증 환자같은 관계.
하지만 남녀관계에 가장 어려운 점은 사랑하는 타이밍이 같지 않다면 시작조차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참 까탈스럽고 까다로운 관계.

하긴, 이보다 더 귀찮고 더 지겨운 그러나 피할 수조차 없는 맞은 관계가 하나 있긴 하다.
정말이지 귀찮고 지겨운 하지만 떼어낼 수조차 없는 관계.
그래서 평생을 눈물겨운 관계. 바로, 가족이다. (윤제)



제 12화 - 손의 의미
10대가 질풍노도의 시기인건, 아직 정답을 모르기 때문이다.
내가 진짜 원하는게 무엇인지, 정말 날 사랑해주는 사람이 누구인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인지.
그 답을 찾아 이리쿵 저리쿵, 숱한 시행착오만을 반복하는 시기.
그리고 마지막 순간, 기적적으로 이 모든 것의 정답을 알아차렸을 때 이미 우린 성인이 되어 크고 작은 이별들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그 해 겨울, 세상은 온통 헤어짐 투성이었다.

노스트라다무스가 말한 인류의 종말은 오지 않았지만 이들에겐 차라리 종말이 더 나았다.
젝스키스가 돌연 해체를 선언했고, 성남팬들은 애꿎은 조영구의 차를 불태웠다.
2001년, H.O.T.오빠들도 해체를 선언했고 하늘은 무너졌다.
뉴욕 한복판에 비행기가 떨어졌고, 인천 공항이 문을 열었으며
대한민국이 월드컵 4강에 진출하는 말도 안되는 일이 있었다.

노무현 후보가 16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으며 태풍 매미가 한반도를 강타하고
KTX로 이제 서울에서 부산까지 2시간이면 갈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이렇게 대망의 21세기가 시작되었고, 우리들의 90년대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렇게 나의 90년대는 영원히 끝난 줄 알았다.

몽땅 잊고 살진 않았지만 그래도 꽤 무시하고 살았는데, 이렇게 나의 90년대는 마음이 아니라 내 몸이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한 때 미쳤었던 그를 만나는 순간 나는 정확하게 1997년의 이로 돌아갔고 끝난줄로만 알았던 나의 90년대가 다시 시작되었다.
(시원)



제 13화 - 다음에... 아니 지금

잊고 있었다. 지금 좋으면 지금 당장에 그 뜨거움을 있는 그대로 주저없이 표현해내는 녀석이란걸 잊고 있었다.
이렇게 말해버리면 될 것을. 내 지금 당신이 좋으니 내 사람이 되어달라, 지금 당장 이렇게 말해버리면 될 것을.
그예전에도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그저 망설이고만 있었다.

지금보다 절실한 나중이란 없다. 나중이란 영원히 오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눈 앞에 와있는 지금이 아닌 행여 안올지도 모르는 다음 기회를 얘기하기엔 삶은 그리 길지 않다.
게으름과 용기없음으로 지금을 포기한다면 다음 기회에도 희망은 없다.

지금 사랑한다면 최고의 타이밍은 바로 지금이다.
늦기 전에 다가가야한다. 그리고 지금 고백해야한다.
나중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를 일이다. 다음 기회는 영원히 오지 않을 수도 있다. (윤제)




제 14화 - 사랑은 가슴이 시킨다

누구를 좋아하는건 선택의 문제가 아니야. 가슴이 시키는거야.
시원인 너 좋아해. 그건 너도 마찬가지고. 시원이 피하는 너, 이해하는데
시원이가 무슨 잘못이냐. 너희 형제가 마음대로 좋아해놓고 왜 이제와서 시원이가 눈치를 보는데.
걔가 무슨 죄야. 니가 오래 전부터 시원이 좋아했는데 시원이가 몰라줘서? 그게 무슨 잘못이야.
모를 수도 있어. 살다보면 누가 나를 좋아하고 있는지 모를 수도 있다고.

너 아직도 시원이 많이 좋아하지. 그럼 그걸로 이미 게임 끝이야.
니가 아무리 고민하고 머리를 싸매도 답 없어. 이미 좋아하는데 무슨 선택을 해, 무슨 결정을 하니.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형 핑계대지 말고. 가슴이 시키는대로 해. (준희)



제 15화 - 당신이 사랑하는 동안에

형, 나도 포기 안해. 나도 포기 안한다고.
난, 형 때문에 바로 접었어. 시원이 내 맘 속에서 바로 접었다고.
수능 보는 날, 형이 시원이 좋아한다고 고백할거라고 그래서 형이니까.
1초도 안망설이고 시원이 바로 접었어. 근데, 그게 안돼.
그게 안됐어, 그래도. 계속 밀어냈어. 들어오지 말라고. 형이 헤어졌지만 우리 형.
그렇게 쉽게 포기할 사람 아니니까. 내가 잘 아니까. 그래서 포기했어.

사람 좋아하는 마음이 스위치처럼 켰다가 껐다가 맘대로 안되더라.
한번 켜지면, 안꺼져. 나 시원이 좋아해 형. 진심으로 결혼하고 싶어.
세상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형이지만, 그래서 내 모든걸 양보할 수 있지만.
시원이 포기 안해. (윤제)





제 16화 - 첫사랑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

첫사랑.
저 마다의 첫사랑이 아름다운 이유는 첫사랑인 그가 아름다웠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 첫사랑의 시절엔 영악하지 못한 젊음이 있었고, 지독할만큼 순수한 내가 있었으며
주체할 수 없이 뜨거운 당신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다시는, 다시는 그 젊고 순수한 열정의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첫사랑은 무모하다.
영악한 계산 없이 순수와 열정만으로 모든 것을 던져버리고는 결국 실패한다.
하지만 그래서 극적이다. 다시는 가져볼 수 없는 체온과 감정들로 얽혀진 무모한 이야기들.
첫사랑은 그래서 내 생에 가장 극적인 드라마다. 그리하여 실패해도 좋다. 희극보다는 비극적 결말이 오래 남는 법이며,
그리하여 실패한 첫사랑의 비극적 드라마 한 편 쯤 내 삶 한 자락에 남겨두는 것도 폼나는 일이다.

첫사랑은 시절이다.
흘러가면 그 뿐이다. 이제 맞게 되는 새로운 시절엔 새로운 사랑에게 기회를 주어야한다.
첫사랑의 체온과 순수함은 아닐지라도 그 상처로 인해 조금쯤 자라고 성숙해진 어른의 사랑을 기다려야한다.
기다리는 사람만이 사랑을 꿈꿀 수 있다. 그리고 기다리는 사람만이 또 한번 찾아온 사랑 앞에 기적처럼 그를 알아볼 수 있다.

로맨스가 지나면 생활이 온다.
순수함은 때묻어가고 열정은 얼어붙어가며 젊음은 영악함으로 나이들어간다.
그리하여 순수했던 시절의 첫사랑은 이제 고단하고 지난한 일상이 된다. 마치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다.
누구도 성공한 로맨스는 이야기하지 않으니까.

그리하여 성공해도 좋다.
비록 내 삶의 가슴 시린 비극적 드라마는 없지만 세상 그 어떤 오래된 스웨터보다도 편안한 익숙함이 있고
익숙함이 지루할 때쯤 다시 꺼내볼 수 있는 설레임이 있다.

코찔찔이 소꿉친구에서 첫사랑으로 연인으로 그리고 이렇게 남편과 아내로 만나기까지.
우린 같은 시대를 지나 같은 추억을 공유하며 함께 나이들어 가고 있다.

익숙한 설레임, 좋다.

뜨겁고 순수했던 그래서 시리도록 그리운 그 시절. 들리는가. 들린다면 응답하라, 나의 90년대여.







주옥같은 응답하라시리즈 나레이션 모음 | 인스티즈


응답하라 1994

제 1화 - 서울사람

서울의 첫번째 밤, 그 포근하면서도 서걱거리던 이불의 감촉과
뜨거우면서도 서늘했던 그 밤의 공기를 난 아직도 기억한다.
1994년의 서울이란 내게 딱 그랬다. 분주하지만 외롭고, 치열하지만 고단하며
뜨겁지만 차가운 도시. 그리하여 정말 속을 알 수 없는 도시.
우린 당당히 서울 시민이 되었지만 아직 서울 사람은 될 수 없었다. (삼천포)


도시도 사람도, 모든게 두려웠던 스무살의 서울.
그 낯선 땅에서 우리가 이방인이 아닐 수 있었던 유일한 안식처는 우리집, 바로 이 곳. 신촌 하숙뿐이었다.
상상도 못한 일들이 가능했던 그 곳은 서울 특별시였고, 우린 스무살이었다 (성나정)



제 2화 - 우린 모두 조금 낯선 사람들

서울로 올라온지 이제 열흘, 이십평생동안 단 한번도 만난 적 없던 사람들과
함께 밥을 먹고 같은 화장실을 쓰며 난생 처음 만난 녀석과 살 부대며 잠을 잔다.
낯선 도시에서 낯선 사람들과 함께 사는 낯선 집.

어느 날 문득 찾아온 스무살의 봄처럼 내게는 아직 낯설기만 한 이 곳.
우리들의 첫번째 서울 집, 신촌 하숙이다. (삼천포)


나에겐 오빠가 하나 있다. 나에겐 오빠가 하나 있다.
어릴 적 나의 꿈은 오빠와 결혼하는 것이었다.

나에겐 오빠가 하나 있다. 그리고 오빠에겐 소꿉친구가 하나 있다.
우리 셋은 언제나 함께였다.

그러던 어느 봄 날, 마치 거짓말처럼 내 사랑하는 오빠가 멀리, 아주 멀리 떠나버렸다.
그리고 그 날 이후, 오빠 친구는 우리 오빠가 되었다.

나에겐 오빠가 하나 있다.
어릴 적 나의 꿈은 오빠와 결혼하는 것이었다.

내 머릴 쓰다듬던 오빠의 손, 오빠의 숨소리, 오빠의 냄새. 오빤 분명 그대로였는데, 그 날 난 오빠가 낯설어졌다.

익숙한 버릇, 익숙한 일상. 그리고 익숙한 사람이 어느 순간 낯설어지는건 딱히 혼란스러울 일만은 아니다.
어쩌면 그건 새로운 일상과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는 은밀한 신호일지도 모르니까. (나정)





제 3화 - 신인류의 사랑

우린 X세대다.
물론 지금은 스마트폰과 인터넷으로 무장한 또 다른 신인류에 밀려 모두 멸종해버렸지만,
내 스무살의 우린 인류 역사상 최첨단의 문명을 소비하는 신인류였다.
PC통신으로 사랑을 찾고, 삐삐로 마음을 전하며, 음성메세지로 이별을 통보하던 우린 역사상 가장 젊은 인류였다.

하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신인류의 사랑이 설레고 가슴뛰는 이유는
삐삐도, 스마트폰도, 최첨단의 그 어떤 유행때문도 아니다.

젊음은 서툴고 투박해야하며 사랑은 해맑고 촌스러워야한다.
그 것이 내 스무살의 사랑이 설레고 가슴 뛰게 기억될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이다.
내 나이 스물. 나는 지금 서툴고 촌스러운 사랑을 시작한다.

내 나이 스물. 나는 지금 첫 사랑을 한다. (나정)




제 4화 - 거짓말

하필이면 만우절이었다.
거짓말같던 죽음도, 거짓말이 되어버린 고백도. 하필 그랬다.

누구 하나 거짓을 말한 사람도 없었고, 그래서 누구 하나 속은 사람도 없었지만
거짓말에 속은 만우절 바보보다 천만배는 더 처참한 만우절이었다.

때때로 현실은 거짓말보다 잔인하다. (나정)




제 5화 - 차마 하기 힘든 말

내 사랑하는 이들에게 차마 하긴 힘든 말들이 있다.
나로 인한 상처들에 변명해야 할 때, 그리고‥

그리고 아직 준비 안된 그들에게 진실을 전해야 할 때.
사랑하는 사람에게 차마 받아들이기 힘든 진실을 들려주어야 할 때.

차마 죽어도 하기 힘든 말을 건내야 할 때. 딱, 한가지만 생각하면 된다.
그 어떤 긴 긴 말보다도, 그 어떤 말주변보다도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눈빛.
그 하나면 충분하다. (쓰레기)




제 6화 - 선물학 개론


서울 생활 4개월차.
대학 첫 여름방학이 다가올 무렵, 우리는 친해졌고, 가까워졌고, 익숙해졌다.
그리고 딱 그만큼. 미안함은 사소해졌고, 고마움은 흐릿해졌으며, 엄마는 당연해졌다.

1994년 초여름의 일상은, 그렇게 엄마를 잔인하고 깊게 할퀴고 있었다. 엄마는, 아팠다.
1994년 초여름. 엄마는 그렇게 수십년을 당연하게 여겼던 여자와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다.



세상 모든 관계는 익숙해지고 결국엔 당연해진다.

선물의 가장 강력한 힘은 그 익숙하고도 당연한 관계를 새삼 다시 설레고 감사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선물을 고르고, 카드문구를 고민하며 그에게 마음을 쓰는 사이 어느새 그 사람은 내게 다시금 새삼스러워진다.

그리고 그 마음이란, 반드시 전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익숙하고도 당연한 관계가 급기야 무뎌짐으로 퇴화되어 버린다면
이젠 그 어떤 선물도 뒤늦은 노력도 의미 없다.

아무 관심도 받지 못하고 베란다 귀퉁이에서 바짝 시들어버린 난초에게 때늦은 물과 거름은 소용 없는 일이다.

관계가 시들기 전에 서로가 무뎌지기 전에 선물해야한다.
마음을 전해야한다.

알고 받는 선물이란 재미 없다. 모름지기 선물은 서프라이즈가 생명인 법이다.
기막힌 타이밍에 거짓말처럼 날아든 선물은 그래서 더욱 기적같은 감동이었다.

물론 보내는 이의 이름도 주소도 없었지만 그 선물을 누가 보내주었는지 우린 알 것만 같았다.


'Present'라는 영어단어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선물, 그리고 현재.
어쩜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선물은 현재. 바로 지금 눈 앞의 시간이라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비록 늘 투닥거리고, 지지고 볶아댔지만 함께 기대며 살부대며 행복했던 시간들.
1994년, 우린 선물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나정)



제 7화 - 그 해 여름

누군가 그렇게 노래했더랬다.
여름은 젊음의 계절, 그리고 사랑의 계절이라고.

1994년 그 해 여름, 계절은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고.
나의, 그리고 우리의 여름은 이제 시작되고 있었다. (칠봉)




제 8화 -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합니다

가끔 상상을 한다.
만약 이 날 그 전화를 받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터미널로 향하지 않았더라면 우린 어떻게 되었을까.

산다는 것은 매 순간 선택이다. 설령 그 것이 외나무다리라해도 선택해야만한다.
전진할 것인가, 돌아갈 것인가. 아님 멈춰설 것인가.

결국 지금 내가 발딛고 있는 이 시점은 과거 그 무수한 선택들의 결과인 셈이다.
난 그 날의 전화를 받았고, 터미널로 향했으며, 그 작은 선택들이 모여 우린 지금의 현재를 맞았다.

그 어떤 길을 택하더라도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은 남기 마련이다.
그래서 후회없는 선택이란 없는 법이고, 그래서 삶의 정답이란 없는 법이다.
그저 선택한 길을 정답이라 믿고 정답으로 만들어가면 그만이다.

내 지난 선택들을 후회없이 믿고 사랑하는 것. 그게 삶의 정답이다.

내 지난 선택들을 후회없이 믿고 사랑하는 것. 그 것이 정답이고, 그 것이 가장 멋지게 나이들어가는 방법이다. (삼천포)



제 9화 -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진심이란, 늘 뒤에 숨어있기 마련이다.
워낙 수줍고 섬세한지라 다그치고 윽박지를수록 더 깊은 곳으로 숨어든다.

방법은 하나. 진심이 스스로 들 때까지 그저 눈마주치고 귀기울이는 수 밖에 없다.
말을 접고, 생각을 접고 기다리다보면 어느 순간 진심은 툭 튀어나오기 마련이다.
그 어떤 잘난척도, 고고한 충고도 진짜 위로는 될 수 없다.

위로란, 진심이 나누어지는 순간 이루어지는 법이다.
누군가를 위로하고 싶다면 그저, 바라보고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다행스럽게도 내겐 나도 모를 내 진심을 읽어주는 사람이 있다.
존재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형이 있다. (빙그레)


막상 진짜를 말하려고 하면 한꺼번에 수만가지 생각이 떠올라 말문이 막힐 때가 있다.
그럴 땐 숨을 한번 크게 고르고 떠다니는 그 생각들을 하나씩 잡아내면 된다.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 하고 싶었던 그 말들이 실은 두 세마디면 정리되는 아주 단순한 것이었음을 알게 된다.

이제, 이렇게 말을 시작하면 된다.
그러니깐, 내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은…
그러니깐, 내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은…
(칠봉)



제 10화 -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를>

마지막은 늘 마지막이라는 실감 없이 지나가버린다.
세상 모든 마지막이 가슴 아픈 이유는 그렇게 실감하지 못한 채 흘려보낸 아쉬움 때문일지도 모른다.

1994년 가을, 아빠의 서울 쌍둥이가 마지막 우승을 거뒀다.
그리고, 영원할 것만 같았던 우리의 스무살의 마지막 계절도 실감없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런 날들이 있었다.
해태가, 성균이가, 윤진이가. 눈이 퉁퉁 부어 들어오는 날들이 있었다.
하숙집에 와서도, 하루종일 목이 메여 하던 날들. 친구들이 고향집에 다녀온 날이었다.

이별은 그렇게 슬프고도 낯설다.
헤어짐이란, 결코 익숙해지지 않는 법이다.
게다가 마지막일지도 모를 이별이라면 단 하루의 인연이라해도 오래도록 먹먹하게 남기 마련이다.

1994년 스무살과 헤어지던 마지막 밤.
우린 그렇게 어쩜 마지막일지 모를 이별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쩜 마지막일지 모를 운명의 밤을 보내고 있었다.

첫 사랑. 그리고 스무살.
이처럼 아련하고 두근대는 말이 또 있을까.

1994년 12월 31일. 그렇게 우리의 스무살은 끝이 났고, 그렇게 우리의 첫 사랑은 새로운 시작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그렇게 우리들의 첫 사랑은 새롭게 두근거리고 있었다.


예측할 수 없었던 우리들의 첫키스처럼, 한치도 내다볼 수 없는 우리들의 사랑이, 스물 한살이,
1995년이.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나정)



제 11화 - 짝사랑을 끝내는 단 한가지 방법>

사랑도, 인생도. 어쩌면 야구를 닮았다.
숱한 위기상황이 닥쳐도, 제 아무리 피해가려 애써봐도,
결국 누군가가 승부를 내야만 경기가 끝이 난다.

짝사랑. 가슴을 앓고 머리를 싸매도 어차피 혼자하는 사랑에 다른 방법이란 없다.
사랑을 얻든, 무심히 차이든, 짝사랑을 끝내고 싶다면 유일한 방법은 고백뿐이다.

정면으로 승부한 뒤에야 끝이 난다.
사랑이란, 어쩌면 야구를 닮았다.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세상은 넓고 라이벌은 많다.
사랑은 어쩌면, 야구를 닮았다. (쓰레기)


물론, 세상엔 차마 고백되지 못한 짝사랑들이 훨씬 더 많다.
벗어날 방법을 알면서도 벗어나지 못하는 바보들.
짝사랑은, 그래서 가슴 아프다. (해태)



제 12화 - 우리에게 일어날 기적

그 때 처음으로 알았다. 남자에겐, 절대 건드려서는 안될 단 한명의 여자가 있다는 사실을.
그녀의 이름은, 첫사랑이다.


누군가는 기적이 있다하고, 누군가는 기적따윈 없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 절박함의 순간엔 누구나 기적을 기도하고, 기다리기 마련이다.

그리하여 기적은 있어야만 한다.
절박한 그 모든 순간들에 희미한 희망이라도 깃들 수 있도록 기적은 있어야만 한다.

하지만 기적이란, 흔하지 않아서 기적이다.
예상치 못했던 행운보다 생각치 못했던 불행이 훨씬 많은게 세상이다.

삶이란, 기적만을 믿으며 살기엔 매몰차고 혹독하다.

기적은 결국 확률의 문제다.
기적은 오직 한 사람에게만 존재하며, 남은 9,999명에겐 기적이란 헛소리일 뿐이다.
삶이란, 절대적이고도 압도적인 확률로 잔인하다.

그래도, 그래도 기적은 필요하다.
단 한번도 일어날 확률 없는 제로의 절망보다는
그나마 천만번 중 한번이라도 일어날 수 있는 실낱의 가능성이 낫다.
그래야만, 희망도 있다.

70억 지구에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해줄 확률이란 얼마나 될까?
지금 내게 어쩌면 기적이 일어날지도 모르겠다.
(나정)





제 13화 - 1만 시간의 법칙

수많은 학자들의 연구 결과, 어떤 한 분야에서 성공을 거두기 위해 필요한 시간은 1만 시간이었다고 한다.

1만 시간의 법칙.
모짜르트도, 비틀즈도, 스티브 잡스도 , 김연아도.
그들의 성공을 만든 것은 타고난 천재성도, 행운도 아닌, 1만시간 이상의 노력과 고통이었단다.

어쩜 일도, 관계도, 사랑도 마찬가지다.
마침내 성취하기 위해선 타고난 그 무엇과 운좋음을 기대할 것이 아니라,
끝까지 노력하고, 애쓰도, 고통스러워야 한다.
끝날 때까진, 아직 끝난게 아니다.
(칠봉)



제 14화 - 나를 변화시킨 사람들Ⅰ

이 날로 내 군생활이 끝나는 줄 알았다.
선임들에게 혼나는 것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지금 내 어깨 위의 45kg 완전군장을 버텨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흔한 말로 계급은 고스톱을 쳐서 딴게 아니라고 한다.
같았던, 천하의 쓸모없는 인간인 줄로만 알았던 최병장.
그 인간이 내 젊음의 가치관을 바꿔놓았다.

해보지 않고서는 깨닫지 못하는 일들이 있다는 것.
가보지 않고서는 보지 못하는 시야가 있다는 것을 그는 일깨워주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최병장이 내게 가르쳐준 더 큰 깨달음은.

냉험한 조직사회에서 경험과 시간이 가르쳐주는 가장 소중한 것은 생존을 위한 융통성이라는 것을 난 알게 되었다.(해태)


가족을 무릅쓰고 환경을 이겨내어 마침내 이뤄낸 꿈이란 폼나는 법이다.
대부분의 우린, 내 사랑하는 이들을 차마 밟고 넘어설 수 없어 끝끝내 스스로 꿈을 내려놓고 만다.

하지만 괜찮다.
얼마 되지도 않는 드라마틱한 성공담따위에 기죽어 스스로 좌절과 패배감에 휩싸일 필요는 없다.
우리에겐 꿈만큼이나 사람도 소중했을 뿐이다.

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나를 바꾸는 결단.
꽤 괜찮고, 폼나는 일이다. (나정)



제 15화 - 나를 변화시킨 사람들Ⅱ

꿈은, 늘 나를 자극시키고 변화시킨다.
그러나 나를 더욱 크게 달아오르고, 더 크게 바뀌도록 만드는 것은
그 꿈으로 가는 길목에 만난 라이벌이다. (칠봉)


서태지가 윤진이를 변화시키듯, 윤진이가 성균이를, 오빠가 나를, 내가 오빠를.
그렇게 바꿔가고 있었다.

사랑하지 않는다면 결코 생각치도 못할 일들을 우린 해내고 있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건, 순전히 사랑이다. (나정)

 

 

+ Recent posts